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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작가 : Claude Monet

빛으로 완성된, 영원한 인상주의자

Magazine No.3

2019년에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Meules)”가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회사(Sotheby’s New York)에서 한화 약 1,283억에 낙찰됐다. 당해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낙찰된 작품이며 모네 작품들 중 역대 최고가이면서도 인상주의 화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낙찰가였다. 이로써, 모네는 시대와 국경을 막론하고 꾸준한 사랑을 받는, 식지 않는 인기의 소유자임을 증명했다. 다양한 색채의 수많은 풍경화를 남기며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었다 평가받고 있는 모네. 캔버스에 빛을 담으려 했던 비범함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색채의 경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들게 하는 모네의 작품. 바라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모네의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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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더비(Sotheby’s)에서 110.7만달러(한화 약 1,280억)에 낙찰된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Meules)” (1872년 작)
출처: Sotheby’s





 
‘인상파’를 만들어내다.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다섯살이 되던 해, 살림이 어려워져 가족과 함께 르아브르(Le Havre)로 이사했고, 르아브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먼 훗날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스무 살 나이에 파리로 간 모네는 전통주의 화가인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화실에 들어가 후일 인상주의 화가 동료가 될 르누아르(Auguste Renoir), 바지유(Frédéric Bazille)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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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 파리 Musée Marmottan Monet에 소장되어 있는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1872년 작)
출처: Musée Marmottan Monet Collection

19세기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화가들은 야외로 나가 실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모네 또한 르아브르에서 만난 풍경화가 부댕(Eugène Boudin)의 추천으로 야외에서 자연광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모네의 ‘빛에 대한 집착’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네하면 제일 먼저 기억나는 작품과 대표 작품은 아마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일 것이다. 전시에 출품된 이 작품을 보고 비평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가 작품의 제목을 비꼬며 조롱하는 칼럼을 썼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탄생하게 되었다. 간결한 붓터치와 단순한 기법을 선보이며, 이전 회화의 주요 주제 및 특징이었던 ‘서사’와 실물에 최대한 가깝게 그리는 ‘내추럴리즘(Naturalism)’을 제거하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는 인상파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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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내 작품을 논하고 이해하는 척한다. 
마치 이해해야만 하는 것처럼. 단순히 사랑하면 될 것을…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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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대한 집착

모네는 평생 ‘빛이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빛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뙤약볕이나 강한 파도에 굴하지 않고, 심지어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순간까지도 야외 작업을 고집했다. 모네에게 ‘빛’은 최고의 물감과 동시에 모티브였던 것이다. 피사체가 빛에 의해 ‘얼마나 다양한 색상과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캔버스에 끊임없이 담으려 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에 모네의 연작(Series)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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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건초더미(Stacks, End of Summer)”, “건초더미(Grainstacks, in Bright Sunlight)”,
“건초더미(Grainstacks, Effect of Snow)”, “건초더미(Grainstacks in the Sunlight, Morning Effect)”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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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대성당 정문(The Portal of Rouen Cathedral in Morning Light)”, “대성당 정문(Rouen Cathedral, West Façade, Sunlight)”,
“대성당 정문(Rouen Cathedral Façade and the Tour d’albane, Grey Weather)”

출처: Wikipedia


모네의 연작(Series)은 동일한 모티브를 유사한 구도와 서로 다른 분위기로 반복해서 그린 작품들이다. 그 중 1892년 작 “루앙 대성당 연작(Rouen Cathedral Series)”은 모네가 가장 열정적으로 그린 연작 중 하나이다. 루앙 대성당 건너편 란제리숍 2층에 세를 얻고, 2월부터 4월까지 약 2개월간 하루에 14점 가까이 그리는 엄청난 의욕을 보인다. 란제리숍을 방문하는 여자들의 갖은 눈초리를 받았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다. 1891년의 건초더미 연작처럼 모네는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대성당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굳은 날씨와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빛과 씨름을 하며 작업에 열중했다.

그의 빛에 대한 집착과 천재성이 서서히 빛을 바라기 시작한 걸까. 모네의 그림에 비판만 일삼던 평론가들이 호평을 하기 시작했다. 1876년 단 2백 프랑이었던 모네의 그림이 1890년대 초에 3천 프랑, 1895년에는 1만 5천 프랑이 되었고, 1921년에는 20만 프랑으로 값이 뛸 정도로 모네는 ‘인상파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수련(Water L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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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뉴욕 The Metropolitan Museum에 소장되어 있는 “수련 연못(Bridge over a Pond of Water Lilies” (1899년 작)

모네는 1890년에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Giverny)에 집을 마련한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모네의 작품 양상에 변화를 맞는다. 정원을 가꾸면서 만든 연못을 가로지르는 일본식 다리, 정원 곳곳에 심은 벚나무와 버드나무, 새로 판 연못에 심은 수련과 아이리스가 그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었고, 이에“수련(Water Lilies)” 연작이 만들어진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약 250여 점에 달한다. 그는 빛에 의해 변해가는 연못의 표면과 아슬아슬하게 떠있는 수련을 그리며 매 순간 새롭고 흥미로운 인상을 포착했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채와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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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뉴욕 The Museum of Modern Art에 소장되어 있는 “수련(Water Lilies)” (1914-1926년 작)
출처: MoMA(The Museum of Modern Art)

“수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네 자신이 구성한 그림이다. 이것이 “수련”이 인상주의에 큰 의미가 있는 이유이고, 모네에게 화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가져다준 계기일 것이다. 지병인 백내장으로 시력이 악화되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네는 정원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뭘 그리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시력을 다 잃기 전에 모든 것을 그려보고 싶다며 그림에 더 열중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점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갔다. 수련의 아름다움은 형태를 잃어갔고, 물의 표면은 더 이상 빛에 의한 반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갔다. 점차 추상화, 단순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이에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은 모네의 “수련”이 추상회화의 출발점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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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그림 그리는 것과 정원 가꾸는 것을 빼고는
좋은 것이 없다.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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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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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The Houses of Parliament, Sunset)” (1903년 작)
출처: National Gallery of Art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모네를 ‘당대의 미켈란젤로’ 라고 표현했고, 앙드레 마송(Andre Masson)은 모네의 “수련” 대작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Orangerie Museum)을 ‘인상주의의 시스틴 채플’이라고 표현할 만큼 모네가 당대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것에 변화를 주어 기존의 틀을 깨며 창시된 인상주의, 그 양상을 이어받아 현대미술과 추상미술이 시작되었다.



 
2019년에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Meules)”가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회사(Sotheby’s New York)에서 한화 약 1,283억에 낙찰됐다. 당해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낙찰된 작품이며 모네 작품들 중 역대 최고가이면서도 인상주의 화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낙찰가였다. 이로써, 모네는 시대와 국경을 막론하고 꾸준한 사랑을 받는, 식지 않는 인기의 소유자임을 증명했다. 다양한 색채의 수많은 풍경화를 남기며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었다 평가받고 있는 모네. 캔버스에 빛을 담으려 했던 비범함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색채의 경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들게 하는 모네의 작품. 바라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모네의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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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더비(Sotheby’s)에서 110.7만달러(한화 약 1,280억)에 낙찰된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Meules)” (1872년 작)
출처: Sotheby’s



 
‘인상파’를 만들어내다.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다섯살이 되던 해, 살림이 어려워져 가족과 함께 르아브르(Le Havre)로 이사했고, 르아브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먼 훗날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스무 살 나이에 파리로 간 모네는 전통주의 화가인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화실에 들어가 후일 인상주의 화가 동료가 될 르누아르(Auguste Renoir), 바지유(Frédéric Bazille)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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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 파리 Musée Marmottan Monet에 소장되어 있는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1872년 작)
출처: Musée Marmottan Monet Collection

19세기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화가들은 야외로 나가 실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모네 또한 르아브르에서 만난 풍경화가 부댕(Eugène Boudin)의 추천으로 야외에서 자연광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모네의 ‘빛에 대한 집착’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네하면 제일 먼저 기억나는 작품과 대표 작품은 아마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일 것이다. 전시에 출품된 이 작품을 보고 비평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가 작품의 제목을 비꼬며 조롱하는 칼럼을 썼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탄생하게 되었다. 간결한 붓터치와 단순한 기법을 선보이며, 이전 회화의 주요 주제 및 특징이었던 ‘서사’와 실물에 최대한 가깝게 그리는 ‘내추럴리즘(Naturalism)’을 제거하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는 인상파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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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대한 집착

모네는 평생 ‘빛이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빛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뙤약볕이나 강한 파도에 굴하지 않고, 심지어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순간까지도 야외 작업을 고집했다. 모네에게 ‘빛’은 최고의 물감과 동시에 모티브였던 것이다. 피사체가 빛에 의해 ‘얼마나 다양한 색상과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캔버스에 끊임없이 담으려 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에 모네의 연작(Series)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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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건초더미(Stacks, End of Summer)”,
“건초더미(Grainstacks, in Bright Sunlight)”,
“건초더미(Grainstacks, Effect of Snow)”,
“건초더미(Grainstacks in the Sunlight, Morning Effect)”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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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대성당 정문(The Portal of Rouen Cathedral in Morning Light)”,
“대성당 정문(Rouen Cathedral, West Façade, Sun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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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ikipedia


모네의 연작(Series)은 동일한 모티브를 유사한 구도와 서로 다른 분위기로 반복해서 그린 작품들이다. 그 중 1892년 작 “루앙 대성당 연작(Rouen Cathedral Series)”은 모네가 가장 열정적으로 그린 연작 중 하나이다. 루앙 대성당 건너편 란제리숍 2층에 세를 얻고, 2월부터 4월까지 약 2개월간 하루에 14점 가까이 그리는 엄청난 의욕을 보인다. 란제리숍을 방문하는 여자들의 갖은 눈초리를 받았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다. 1891년의 건초더미 연작처럼 모네는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대성당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굳은 날씨와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빛과 씨름을 하며 작업에 열중했다.

그의 빛에 대한 집착과 천재성이 서서히 빛을 바라기 시작한 걸까. 모네의 그림에 비판만 일삼던 평론가들이 호평을 하기 시작했다. 1876년 단 2백 프랑이었던 모네의 그림이 1890년대 초에 3천 프랑, 1895년에는 1만 5천 프랑이 되었고, 1921년에는 20만 프랑으로 값이 뛸 정도로 모네는 ‘인상파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수련(Water L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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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뉴욕 The Metropolitan Museum에 소장되어 있는
“수련 연못(Bridge over a Pond of Water Lilies” (1899년 작)

모네는 1890년에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Giverny)에 집을 마련한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모네의 작품 양상에 변화를 맞는다. 정원을 가꾸면서 만든 연못을 가로지르는 일본식 다리, 정원 곳곳에 심은 벚나무와 버드나무, 새로 판 연못에 심은 수련과 아이리스가 그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었고, 이에“수련(Water Lilies)” 연작이 만들어진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약 250여 점에 달한다. 그는 빛에 의해 변해가는 연못의 표면과 아슬아슬하게 떠있는 수련을 그리며 매 순간 새롭고 흥미로운 인상을 포착했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채와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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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뉴욕 The Museum of Modern Art에 소장되어 있는
“수련(Water Lilies)” (1914-1926년 작)
출처: MoMA(The Museum of Modern Art)

“수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네 자신이 구성한 그림이다. 이것이 “수련”이 인상주의에 큰 의미가 있는 이유이고, 모네에게 화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가져다준 계기일 것이다. 지병인 백내장으로 시력이 악화되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네는 정원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뭘 그리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시력을 다 잃기 전에 모든 것을 그려보고 싶다며 그림에 더 열중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점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갔다. 수련의 아름다움은 형태를 잃어갔고, 물의 표면은 더 이상 빛에 의한 반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갔다. 점차 추상화, 단순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이에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은 모네의 “수련”이 추상회화의 출발점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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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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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The Houses of Parliament, Sunset)” (1903년 작)
출처: National Gallery of Art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모네를 ‘당대의 미켈란젤로’ 라고 표현했고, 앙드레 마송(Andre Masson)은 모네의 “수련” 대작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Orangerie Museum)을 ‘인상주의의 시스틴 채플’이라고 표현할 만큼 모네가 당대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것에 변화를 주어 기존의 틀을 깨며 창시된 인상주의, 그 양상을 이어받아 현대미술과 추상미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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