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태생으로 벨기에 출신의 식물 화가인
피에르-조셉 르두테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했습니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피에르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는데요.
1782년 조경과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형과 함께
파리로 떠난 뒤 그곳에서 식물학자인 샤를 루이 르에리쩨
드 브루텔 (Charles Louis L'Héritier de Brutelle)를 만나
식물 그림이란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왕실의 공식적인 화가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되죠.
그도 그럴 것이 피에르의 그림은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했으며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피에르가 그린 장미와 백합, 백일홍, 나리 등의
수많은 꽃은 본래 식물도감을 위한 자료로 그려진 것이었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나머지 예술 작품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은은한 수채화 톤을 선호한 그의 탁월한 묘사는 1,800종 이상,
세계 각국의 꽃을 그렸으며 개수로는 2천 개가 훨씬 넘습니다.
장미꽃을 좋아했던 피에르는 100종이 넘는 장미를 완성했는데요.
몇몇 작품은 수작업으로 채색한 다색 석판 기법으로
런던에서 발행된 <Roses & Fruchte und Blumen>라는
책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Les Roses>가 공개되었으며
피에르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시리즈로 평가받고 있죠.
꽃과 과일 그림을 좋아했던 왕궁의 귀빈들 덕분에
피에르는 프랑스 내란과 상관없이 비교적 무탈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첫 부인인 조세핀 황후가 친애했던 그는
오를레랑 공작의 딸인 아델라이드(Adélaide) 공주에게 그림을 가르쳤고,
프랑스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식물 데생 수업을 운영했습니다.
사망하는 날까지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는 피에르.
금속에 음각을 새기는 점각 기술을 완성한 덕분에
19세기 인쇄 기술 발전에도 커다란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꽃의 라파엘(Raphael of Flowers)’이란 별명만큼 꽃의 영혼을
온화하고 매혹적으로 담아냈던 피에르는
1825년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의 영예도 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