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변태라고 불리며 평단의 사랑과 혐오를 동시에
받고 있는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1940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사진과 영화를 전공한 정통파인
아라키는 1971년 자신의 신혼여행 중에 아내와
거침없는 성적인 묘사가 드러난 작품 <센티멘탈 여행>으로
사회적 파장과 함께 유명세를 탔는데요.
1960~80년대 일본의 성문화 개혁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서양의 비평가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아키라를 논란의 중심으로 불러냅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동양의
섹슈얼리즘에 감탄하며 아라키를 한껏 띄웠죠.
이후 아라키는 더욱 강력한 성적 메시지 전달에 몰두하게 됩니다.
고문 수준의 에로틱한 이미지를 연구하고 탐구하며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이 너무 외설적이라 일본 정부는
아라키의 전시를 금지하거나 신랄하게 비난했는데요.
한번은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체포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통념의 벽에 번번히
부딪쳐야 했던 아카리는 오히려 일본 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전시와 찬사를 받았고 수많은 사진집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물론, 오늘날의 아라키는 예술의 자유라는 정의 아래
수많은 후배와 제자들을 길러낸 혁신적인
포토그래퍼로 여겨지며 일본 사진계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라키가 처음부터 끝까지 에로시즘과
섹슈얼리즘에만 매달린 것은 아닙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자신의 모든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아
400여 권에 이르는 작품을 펴냈고,
이는 실력 있는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죠.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격동적인
서구화와 변화를 포착하며 평범한 시민들의
초상을 찍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한편, 아라키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1997년 <도쿄 맑음>이란 영화에 조연으로도 출연했는데요.
이 작품은 사실 그의 아내가 글을 쓰고 아라키가
사진을 찍어 연재로 기고하던 기사가 시초였다고 합니다.